한국당은 그것을 자각해야 할 때다.

칼럼 유성옥 | 입력 : 2019/06/13 [10:00]

▲ 유성옥칼럼    

한국당이 국회로 귀환해 정정당당하게 토론해야 하는 이유다. 국회 안에서 옳다는 걸 입증해야 한다. 그나마 정치적 지분을 지키고 훗날을 도모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부정할 수도 없고 도망칠 수도 없다. 우리의 시장에는 가상현실 속에서 장기간 게임을 훈련한 사람들이 계속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그들 세대가 세상의 중추를 장악한지 오래되었다. 게임의 세상에서는 성선설이나 성악설이 존재하지 않는다. 상황에 대한 판단이 있을 뿐이다. 그에 따른 행동은 때로 집단에 이익을 주기도 하고 피해를 주기도 한다.

 

플레이어는 협동을 통해 사회적으로 최대의 이익을 만드는데 기여하기도 하지만, 배신으로 사회의 총 효용을 떨어뜨리기도 하는 것이다. 게임에는 피도 눈물도 없다. 오직, 이기는 전략을 구상하고 구사할 뿐이다. 각박한 세상이다. 우리는 현실의 칼바람 속에서 직관한다. 이렇듯 적자생존의 게임은 인간성을 말살하고야 말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게임문화가 발달할수록 오히려 뚜렷해지는 인간성의 역설을 마주하게 된다. 게임이란 곧 전쟁인데 왜 그럴까. 게임의 지형은 다소 삭막하고 불안하지만 보편적인 플레이어들이 적으로만 간주되지 않는 이유는 뭘까? 게임이나 플레이어들이 두렵지 않고, 심지어는 끈끈한 유대감을 느끼는 것은 왜일까.

 

우리가 필연적으로 범용하게 된 게임의 전략에 그 답이 있다. 39년 전, 행동과학자 아나톨 라포포트가 고안한 이른바 팃포탯(Tit for tat) 전략이다. 이 전략을 사용하는 플레이어는 처음에는 협력하고, 그 이후에는 상대의 바로 전 전략에 반응한다. 만약 상대가 이전에 협력을 했다면, 경기자는 협력하고, 만약 배반했다면, 플레이어는 배반할 것이다. 플레이어 자신은 균형에서 이반(離反)하지 않고, 상대의 균형에서의 이반을 즉시 벌하고, 균형으로의 귀환을 항상 허용한다는 전략이다. 이렇게 플레이어가 무한 보복전략을 운용하면 플레이어간에 협력과 배반이 반복되면서 균형이 잡혀가는 것이다. 

 

팃포텟 전략은 결국 윈윈전략이다. 정치게임도 윈윈을 위한 무수한 시행착오의 반복이며, 그에 따른 협력은 사회효용을 높이는 것이다. 그러나 협력으로 귀환하지 못하는 배반의 연속은 그 끝에 파멸이 있을 뿐이다. 정치의 경우는 그 대표성 때문에 불특정 다수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한국당이 벌이고 있는 정치게임을 보면서 도달하게 된 생각이다. 한국당의 게임 양태를 보면, 협력적인 선택이 양자의 최선의 선택인 줄 알면서도, 자당의 이익에 치중한 선택으로 결과적으로 서로에게 나쁜 결과를 야기한다는 점에서 팃포탯 전략과는 거리가 먼 제로섬게임을 운용하고 있다 해야 할 것이다. 

 

한국당이 내일로 가는 문을 함께 열지 않고 내일을 함께 보지 못한다면 한국당에 내일이 올 리 없다. 도대체 삭발을 하고 전국 순회를 하면서 무엇을 얻자는 것인가. 보편화 되지 않은 그들만의 게임은 더 이상 흥미를 끌지 못한다. 흑백논리를 장착하고 승자독식을 갈망하는 그들의 땅따먹기는 확장성을 잃은지 오래다. 그런데도 여전히 보혁갈등을 부추겨 보수의 결집 혹은 보수의 전사화(戰士化)를 작당하는 그들이다. 그로 인해 한국당은 자신들을 지지하는 세력을 새로운 시대 밖에 고립시키고 있다. 스스로 험지에 들어가 위기를 조장하고 그들 세력이 성전(聖戰)을 불사하도록 부추기고 있다.

 

누구도 전쟁을 원치 않고, 누구도 한국당을 험지로 몰아넣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그들의 정치게임은 왜 이렇게 난해한가. 그들은 왜 이토록 불안해 하는가? 그들의 위기의식은 진보에 대한 편견에서 출발했다. 진보는 보수의 적이고, 보수는 적을 물리쳐야 한다는 편협한 사고에서 비롯한다. 세상이 진보하는 것은 곧 보수가 몰락하는 것이라는 피해의식이 그 편견의 단초다. 하지만 실제로는 진보가 정치의 정의(正義)는 아니다. 팃포탯 전략을 사용할 때 진보는 오히려 협력을 선택하기를 어려워한다. 심지어는 협상력도 취약하다. 세상을 새롭게 한다는 것은 도전이고, 쟁취하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팃포탯 전략을 따르며 균형에서 이반하지 않고 있다. 이는 게임의 법칙이 지배하는 세상이 낳은 새로운 이념 노선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리고 새로운 것이 반드시 올바른 것은 아니다. 올바르지 않은 것을 견제하는 한 축이 필요한 이유다. 한국당이 국회로 귀환해 정정당당하게 토론해야 하는 이유다. 국회 안에서 옳다는 걸 입증해야 한다. 그나마 정치적 지분을 지키고 훗날을 도모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보수야말로 협상의 귀재가 아니었던가. 잘 하는 것을 해야 한다. 한국당은 그것을 자각해야 할 때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게임의 법칙이 지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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