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힘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유성옥칼럼 | 입력 : 2019/10/21 [09:05]

▲ 유성옥 칼럼

헌정 사상 첫 정권교체를 이룬 1998년 4월, 김대중 대통령은 법무부를 찾아가 검찰이 바로 서야 나라가 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바람과 달리 검찰은 스스로 권력으로 자리매김하며 선출된 권력인 문재인 정부와 맞서는 지경까지 왔다. 일제강점기에 탄생한 비정상적 검찰 권력의 어두운 그림자는 여전하다. 1895년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된 검찰제도는 일제강점기와 해방을 거쳐 1954년 형사소송법이 시행되는 과정에서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막강한 힘을 지닌 권려자들의 비호아래 권력기관으로 승승장구 막 무가내식으로 성장했다.

 

근대 형사사법제도의 기본원리인 소추-수사-재판의 원칙이 확립되지 못한 채 때로는 대륙법, 때로는 영미법을 활용해가며 권한을 무한대로 키웠다. 프랑스혁명 이후인 1808년 나폴레옹은 형사소송법을 개혁하면서 기소권자인 검사에게 직접수사권을 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프랑스 법률가들은 기관의 성격상 검사는 소추권을 가진 당사자로서, 그가 수사를 시행하는 것은 정의에 어긋나고 도시를 위협하는 작은 폭군이 될 것이라고 거부했다. 기소권과 수사권이 검찰에 집중되면 지배권력의 이익을 위해 악용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프랑스 형사소송법은 소추(공소제기)-수사(예심)-재판의 분리 원칙이다.

 

검찰 제도는 독일 등 유럽 각국의 모델이다. 200년 넘게 흘렀지만 한국에서는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장악하고 있다. 이 막강한 권력의 출발점은 일제강점기 형사 제도다. 갑오개혁 때 근대화의 첫발을 내디딜 때부터 견제·분리의 원칙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지만 일제강점기와 해방을 거치면서 검찰의 권력 집중은 더해졌다. 사상범을 처벌하기 위해서든, 경찰의 권력 남용을 막기 위해서든 검찰은 권한을 키우는 기회로 삼았다. 혼란 속에서도 검찰 중심의 수사 체제가 만들어지고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중앙집권적인 검찰 제도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검사 역시 독립된 사법관이라는 인식 확산된 것이다.

 

한국 검찰 제도는 1895년 재판소구성법공포에서 시작됐다. 갑오개혁이 낳은 사법 근대화의 산물인 이 법은 재판과 행정을 나누고, 재판권을 재판소로 통일하는 내용을 담았다. 검사는 재판소의 직원으로 수사와 기소권을 행사하게 돼 있었다. 이 법 제정에도 일본인들이 관여했지만, 1905년 을사늑약 이후에는 일본 검찰 제도가 더욱 노골적으로 이식됐다. 1945년 해방에 이를 때까지 조선 검찰 제도는 19세기 유럽대륙법계의 근대 검찰 제도 형식을 따왔지만 내용은 후진적이었다. 일본 검찰 제도라는 프리즘을 통과한 탓이다. 일본은 1808년에 제정된 프랑스 형사소송법을 토대로 형사 제도가 마련됐다.

 

이에 검사는 직접 사건을 세밀하게 수사하지 않았다. 경찰 수사에 기초한 사건을 수사판사에게 보내고 공소를 제기·유지하는 중계자 몫만 맡았다. 수사 단계부터 경찰의 수사를 지휘하고, 구속영장 발부나 기소 여부까지 판단하는 것은 수사판사였다. 이들은 피의자 신문, 조서 작성 등도 맡는다. 하지만, 일본 검찰이 힘을 키우면서 그 위상과 역할에 변화가 생겼다. 경미한 범죄자를 불기기소유예 하는 검사의 기소편의주의 관행이 뿌리내리고 검사 역시 판사에 준하는 사법관이라는 인식이다. 국가보안법으로 검사 위상 올라가게 했다. 일제강점기에 검사의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과 직접수사권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검사가 경찰에 대한 확고한 통제력을 갖고 있지 않았다. 예를 들어 경찰은 급속처분이 필요한 사건에서 그 취지를 검사에게 통지하고 강제수사를 독립적으로 할 수 있었다. 또 벌금-구류-과료 등 범죄 즉결처분과 무죄-면소-훈계방면 등도 경찰은 가능하다. 이는 검사의 통제력이 미치지 않는 영역이었다. 1954년 9월23일 국회를 통과한 형사소송법에서는 검찰의 수사권과 사법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검찰 내 사법경찰 인력 도입-검찰 작성 피의자 신문조서 증거능력 인정-사법경찰관의 강제수사에 대한 검사의 영장 통제 등을 규정하고 있다. 이 골격은 65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수사권과 기소권 등 검찰에 집중된 권한이 분산되지 않는 이유는 검찰이 이를 거부하는 대신 그 권한을 토대로 정권을 좌지우지하기 때문이다. 방식은 이렇다. 정권 전반기에는 과거 정권 비리를 수사해 현 정부의 신임을 얻어 개혁의 시간을 피한다. 정권 후반기에 들어서면 현 정권 비리에 칼날을 들이대 야당이 검찰개혁의 방패막이가 되도록 한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초기에는 적폐 수사에 힘을 쏟더니 이제는 조국 법무부 장관에 칼을 겨누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되는 검찰의 칼바람에 한국 사회는 어김없이 요동친다. 태어난 지 124년이 지났지만, 권력분립이 여전히 이뤄지지 않은 탓이다.

 

무엇보다 검찰의 힘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과거 군부독재 시절에는 보안사나 국가정보원 등이 권력을 독점했다. 문민정부 들어와서는 그 자리를 검찰이 차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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